Posted by 단순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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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오늘, 신군부의 조직적인 행동에 저항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최루탄과 곤봉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자비함을 못이긴 광주 시민들은 용감히 불의에 저항하여 신군부에 저항하였고, 그 대가로 크나큰 상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가 있었기에 1987년 6월 항쟁이 있을수 있었고 결국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요. 我와 非我의 투쟁 가운데에서 우리는 어떠한 결정을 내린것일까요. 우리가 그때 용감히 쓰러졌던 그분들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 있는것일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그분들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그 시간입니다.
과거의 숭고함, 그리고 오늘의 고귀함을 잊지 맙시다.
p.s 아직도 활개치는 저질 프로파간다와 악질적인 망상이 세상의 주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자하면, 이런 고귀함은 이미 퇴색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고귀한 의미를 저 혼자서라도 지켜나갈수 있다면 꿋꿋히 지켜나갈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지식인의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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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링크(Click!)
그러니까, 우리때 한참 아폴로 눈병이 유행했을때가 내가 고3시절... -_-
그때 다들 수능에 열중해 있느라 눈병 안걸리려고 별별짓을 다 했었다. 물론 고 3들만 -_-
1시간에 한번씩 손씻고 세수하기, 하루에 다섯번 세수하기, 심지어는 공공장소 간 다음에는 핸드 클리너(알콜성분이 포함된 겔 형태의 간이소독약)로 손을 씻는 사람까지 있었고, 물론 본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향균 비누로 1시간에 한번씩 손을 씻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공부 못해서 대학 못가면 누가 손해보는데.
그리고 무사히 아폴로 눈병시즌이 끝날 무렵, 우리학교 마지막 아폴로 눈병 환자가 등장했으니...
이거 공부해야하니 집에서 뒹구르르 할 수도 없고. 결국 학교 나왔는데 친한 친구놈들은 눈병 옮는다고 반경 10미터 안에는 오지도 못하게 했다. OTL
그래서 결국. 별도의 공간(...)에서 점심때까지만 자율학습 하고 나 혼자 알아서(...) 하교하는걸로 방침이 정해졌다. 물론 출석은 했다. 담임선생님이 아침에만 확인했으니.(...)
그 해 고 3유일의 눈병환자이자, 최후의 눈병환자는 나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긴 한 해였다. 뭐, 그것도 지금와서는 다 추억이지만.
p.s 그때당시 내 옆자리 앉았던 친구놈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
"너 눈병걸려서 병원간 다음에 뭐했는지 알아?"
"뭐했는데?"
"애들이 양호실에서 크레졸 가져와서 니자리 소독했어"
"..."
이 쉐이들. 내가 무슨 X이고, 내자리가 변기냐. 왜 크레졸이냐고. OTL
(물론. 고등학생입장에서는 공짜니까 그걸 썼겠지...-_-)
Posted by 단순한생각
- 고 1때.
분업이란게 어디있었나. 시키면 해야했다. 물뜨는것부터 청소, 동아리의 주활동까지. 선배들도 그래왔고, 나도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으니, 동기 열놈중 일곱명이 탈락할줄은 아무도 몰랐다. 특히 여고 세명이 탈락한건 우리 기수의 트라우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종의 사건으로 특정 선배에게 미움을 샀고 혀가 짧았던 내가 누구보다도 빨리 정식 자격을 획득한것은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특정선배가 그때는 부장이었으니... 내가 편할리가 없었다. 당연히 3D파트로 밀려날 수 밖에... -_-
- 고 2때
이때는 내 고등학교때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절인거 같다. 선배들에게 본격적 반기(?)를 들던 시절이고, 이런저런 여러 사정들 - 지금이나 예전이나 난 '배후 조작'이라는걸 참 좋아하는거 같다. 뭐랄까, 밝은 세계에서는 좀 곤란한 행동을 자주한다고나 할까; - 로 인하여 남은 동기들 세명과 함께 동아리를 이끄느라 그야말로 얼굴이 반쪽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뭐, 군복무시절 얼굴보다는 1만배 낫지만...;
동기들 긁어모아야 달랑 셋이고, 이 세명이서 꾸려나가려니 참 고달픈것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서로 일을 나누어서 하게 되었고, 이때의 경험으로 이른바 분업화 과정이란걸 겪게 되었다. 동아리의 주 활동은 내가 다 맏고, 재정이라던가 사무업무는 부장을 맏았던 동기 R군이, 그리고 대외업무(?)는 동기 M군이 맏았다. 그리고 그 체계는 워낙 잘 맞아떨어졌다. 대외업무(?)를 제외하고는 제각기 자기 직속후배를 키우게 되었으니.
- 졸업후
어느새 저 분업과정은 엄청나게 진정되었다.
동아리의 주 업무도 Local/DX로 나뉘었고, 심지어는 각 Channal별로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것이 관례가 되었다. 사무업무도 지금은 네다섯명이 맏고, 대외 업무도 두세명이 동시에 맏는게 관례가 되었다. 그 덕에 나는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맨 먼저 후배들에게 누가 무엇을 담당하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사실 분업과정을 만든것은 적은 인원이 효율적으로 동아리의 업무를 분담하기 위한 방법중 하나였다. 하지만 분업을 했다고 해서 다른 일을 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내가 아프면 동기중 누가 그 일을 했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무슨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만약 누군가가 그 자리에 없고, 핸드폰도 없으면 그 일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모든일을 하는것 역시 좋은건 아니다. 종종 같은 내용의 일 가지고 싸우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 뭐, 내용은 오십보 백보지만 그거에 목숨거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 중복된 일을 한다거나, 서로 할줄 알고 미루다 보면 그건 동아리 운영에 크나큰 피해로 되돌아올게 분명하니까.
뭐랄까, 분명 그 원인을 제공한 한 사람으로써 저 문제를 해결해야할텐데 - 선배들은 어찌된 일인지 모르고, 후배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 정답이란 없는거 같다.
p.s 1. 그리고 저렇게 한 분야만 파고들다보니, 현재 담당이 없는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만약 내가 다시 On-Air하면서, 연맹 정회원 가입비가 부담되어 QSL Manager로 동아리를 지정하면 그에 따른 업무는 누가 처리를 해 줄까. 한 10기 후배까지는 그때 처리방법을 알고, 은사님도 알겠지만 애들이 무지하게 헤멜건 눈에 너무나도 선하다... -ㅅ-;;
p.s 2. 그러고보니 연맹 종신정회원 가입비가 50만원이고, 새로 안테나와 장비 맞추려면 대충 150은 드니까, 이 취미를 다시 시작하려면 못해도 200은 모아야겠군... 역시 취직하고 결혼하기 전에 후다닥 돈 모아서 준비해둬야하나... 너무 벌인 취미가 많은것도 문제야. 문제.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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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그곳은 과연 언제쯤 갈수 있으리.
- 단순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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